별과 나, 그리고 고요의 시간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멈칫하게 된다.
도시의 불빛이 조금 잦아든 새벽녘, 까만 하늘 위로 점점이 박힌 별들이 말없이 반짝이고 있다.
그 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고, “너 역시 나와 다르지 않다”고.

명상을 하다 보면 종종 이 별빛과 비슷한 감각을 느낀다.
내 안의 생각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모든 감정이 고요해질 때,
남는 것은 단 하나의 ‘존재감’이다.
그것은 ‘나는 살아 있다’는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나는 이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확신에 가깝다.
별을 바라볼 때 느끼는 그 무한함이,
사실 내 안에도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어쩌면 인간은 본래부터 별을 그리워하도록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몸은 지구 위에 있지만, 그 구성 요소는 모두 우주에서 온 것이다.
우리의 뼛속에는 별의 먼지가 있고, 우리의 피는 태양의 흔적을 품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별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향수를 느낀다.
그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닮아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연결되어 있는 어떤 근원의 기억 말이다.

명상은 그 기억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눈을 감고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엔 산만했던 생각들이 서서히 사그라든다.
마음속 파도가 잦아들고, 모든 것이 조용해진다.
그때 느껴지는 고요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다.
그것은 무한히 확장되는 공간이다.
나라는 경계가 사라지고, ‘별과 나의 구분’이 없어지는 자리.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보던 별빛은 사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도 빛나고 있었다는 것을.
별은 수천 광년 떨어져 있어도 그 빛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닿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전한 작은 사랑과 이해의 마음도 언젠가 반드시 도착한다.
시간은 길을 잃지 않는다.
진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잠시 눈을 감는다.
별이 보이지 않는 날에도, 내 안의 별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나 자신에게 다시 묻는다.
“지금, 나는 나와 연결되어 있는가?”

별을 바라보는 일은 사실 자신을 바라보는 일과 같다.
외로움은 별을 통해 위로받고, 두려움은 어둠 속에서 조금씩 녹아내린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이 투명해진다.
별빛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인지, 내 마음이 별로 흘러가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순간 나는 ‘온전히 지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는 끝없이 팽창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내가 느끼는 고요는 결코 작지 않다.
그 고요는 내가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자, 세상과 화해할 수 있는 문이다.
별이 하나의 점이라면, 우리의 마음 또한 수많은 빛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빛들이 모여 어둠을 밝히듯, 우리의 존재도 결코 미미하지 않다.
우리가 그저 ‘존재하고 있음’만으로도, 이미 우주는 완성되어 있다.
별은 멀리 있지만, 그 빛은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도 반짝인다.